2018년을 기대하며: 플랫폼으로서 우리의 역할

데이터로 결혼준비시장을 혁신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하우투메리의 동료들과 여정을 시작한 지 어언 4년이 되었습니다. 폭풍 성장해야 하는 스타트업이 벌써 4살이라니..여러가지 감회가 섞입니다. 시작할 때의 예상이 얼마나 순진하고, 허점투성이었는지 생각하면 겸손한 마음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그 동안 우리 모두 참 어려운 길을 잘도 뚫고 왔다는 자부심도 큽니다. 한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을 기저부터 통째로 바꾼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그만큼 굉장한 일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만, 지금 구성원들을 각각의 타이밍에 만나지 않았으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연말이니 잠시 센티멘탈하게…)

지난 4년 동안 타협할 일이 많았습니다. 늘 생존이 절박했고, 자원이 부족했고, 경쟁자들은 위협적이었습니다. 애초에 오프라인 경쟁자가 90% 이상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활용할 데이터가 없어 발을 디딜 거인의 어깨가 없는 시장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 무모했습니다.

2017년에 접어 들면서 웨딩북이 플랫폼의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예비신부들의 반응이 좋아졌습니다. 초혼 인구의 40%가 가입하니 절대 작은 규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근 앱 리뷰 평점은 4.8+입니다. 예비신부들은 웨딩북을 힘든 결혼준비를 함께 한 동반자처럼, 사람처럼 대해 주십니다. 5월부터 시작한 수익모델도 성수기/비수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여전히 도전적인 과제지만 valley of death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덩달아 긴 혈투로 지쳐있던 내부 분위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고, 가장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낸 만큼 내가 만든 회사라는 애정도 뭍어납니다.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더 기대가 됩니다. 결혼시장의 데이터는 우리를 통해서만 생산될 수 있고, 우리가 아니면 접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지점까지 왔습니다. 소비자와 사업자는 물론 경쟁사들조차 저희와 협업을 하는 것을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긴 시간 고생한 덕분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도 충분히 많이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뤄온 것도 많지만, 앞으로 시장을 놀라게 할 시도가 더 있어서 아직까지도 매일 아침이 기대되고 즐겁습니다.

생존과 성장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나니 그 다음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가 앞으로 웨딩 플랫폼의 지위를 점점 더 공고히 할수록, 예비부부들의 행복하고 현명한 결혼준비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더 촘촘한 생태계의 구심점이 될수록, 우리의 정책과 방향이 수많은 웨딩사업자의 생계에 위협이 될수도,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의 생존과 성장, 구성원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예비부부와 웨딩사업자들의 그것에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2018년을 앞두고 플랫폼의 책임에 대한 고민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총 3가지 관점에서 우리의 역할을 고민했습니다.

상생: Data로 무장된 웨딩플래너

수도권에는 약 1,000여명의 웨딩플래너가 있습니다. 웨딩북의 유일한, 강력한 경쟁자입니다. 서로 방법은 다르지만 예비부부들의 결혼식을 돕는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사업자와 오프라인 사업자의 격돌은 이미 거의 모든 산업에서 무수히 일어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아시다시피 온라인 사업자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결혼준비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겁니다. 비효율적인 중개방식을 바꿔 거래비용를 줄이고, 사업자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리스팅하고, 누굴 통해 가나 가격과 혜택이 동일하게 기준을 잡아주고, 쌓인 데이터로 현명한 선택을 돕는 일을 반복하면 됩니다. 우리는 기존 오프라인 사업자들이 하지 못했던 큰 딜들을 만들기 쉽고, 이러한 딜들은 웨딩북만의 컨텐츠가 됩니다. 오프라인 사업자와는 달리 우리는 무조건 소비자 편에서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됩니다. 소비자들도 이걸 알기에 우리를 신뢰합니다.

아마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미 우리가 유일한 웨딩플랫폼이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다 갖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예비부부들은 결국 저희를 통해 지마켓에서 물건 구매하듯, 호텔 예약하듯 편리하게 결혼준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행복하고 현명하게 돕는 것일까요? 결혼준비는 결혼식이라는 결과물이 잘 준비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부로서 처음으로 함께 무언가를 계획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을 버튼 한번 누르는 것으로 대체했을 때, 소비자들이 웨딩북을 지금처럼 추억을 함께한 사람으로 기억해 줄지 의문입니다.

또한 당장 생존 위협을 받게 될 웨딩플래너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웨딩 플래너가 결혼준비의 디렉터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실은 소싱하고, 예약을 잡아주는 정도의 브로커 역할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플랫폼이고, 우리가 성장할수록 이들은 결국 도태되고 말 겁니다. 결국 이기겠지만 생존을 위협받는 웨딩플래너들과 힘겨운 혈투를 해야할 겁니다. 우리에게도 좋지 않고, 그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플랫폼으로서 앞으로 예비부부와 웨딩플래너의 행복까지도 고려해서 판을 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경쟁자인 웨딩플래너조차 우리의 성공을 바라는 판을 짜야 더 빠르게, 더 크게 우리의 비전 – 동아시아의 복지 인프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애초에 누군가를 도태시키면서 복지 인프라가 된다는 것도 모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예비부부와 웨딩플래너, 그리고 웨딩북까지 모두 같이 상생할 수 있는 판을 짤 수 있는 열쇠가 플래너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플래너리는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미니 프로젝트로, 딱 2가지 기능만 있는 유틸리티 App입니다. 그런데 굉장히 단순한 2가지 기능을 무려 200+명의 플래너들이 거의 매일 사용하고 있습니다.

  • 플래너 자신의 예약 일정이 별도 입력 없이도 자동 표시되는 기능(웨딩북Biz, 드레스샵 ERP 연동)
  • 웨딩북Biz를 사용하는 사업자들이 플래너에게 보내는 프로모션을 확인하는 기능

만약 웨딩북Biz와 웨딩북App에서 쌓인 B2B, B2C 데이터를 웨딩플래너들도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Data로 플래너들을 무장시켜 주는 겁니다.

  • 공실 검색부터 예약, 발주, 정산까지 이어지는 업무가 모두 디지털화 됩니다.
  • 소비자의 일정 관리도 자동화됩니다.
    • 새벽까지 카톡에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 경험이 부족해도 소비자에게 무엇을 추천할 지 알 수 있습니다.
    • 추천 근거가 확실하니 소비자에게 더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 거래한 적 없는 사업자와도 최상의 조건으로 거래할 수 있습니다.
    • 내 제휴 샵 5개를 사라고 유도하는 대신, 소비자에게 가장 좋은 상품을 추천하면 됩니다.
  • 꼭 준비하는 품목이지만 소싱하기 어려워 판매할 수 없었던 큰 품목도 팔 수 있습니다.
    • 더 적은 소비자를 관리해도 동일한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웨딩플래너가 웨딩북 생태계에 들어오는 것이 일적으로 편리하고, 경제적으로 유리하고, 소비자에게 집중함으로써 일 자체가 만족스러워진다면 이들은 더이상 경쟁자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동맹세력이 될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영업사원인 웨딩플래너가 아닌, 원래 기대했던 웨딩디렉터를 만나 안심하고 결혼준비를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웨딩북은 플랫폼으로써 소비자와 웨딩디렉터들이 서로를 발견하게 해주고, 공정한 시장의 rule을 만들어 갑니다. 파괴적 혁신이 아니라 상생적 혁신을 하는 웨딩북은 향후 수도권을 넘어 도시단위 확장을 할 때에도 기존 시장참여자의 열렬한 환호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동아시아의 범국가적 복지 인프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뢰: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안전장치

예비부부는 누구를 통해, 어떻게 찾아가느냐에 따라 같은 사업자에게 같은 상품을 구매해도 가격과 혜택이 달라집니다. 직접 방문하는 것보다 중개자를 통해 가는 것이 더 싸고, 직접 예약은 아예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부부는 끊임없이 발품팔고 비교하며 고민하던가, 웨딩플래너가 자기 편이라고 믿고 맡기는 수 밖에 없습니다. 사업자는 웨딩플래너가 아니면 소비자에게 노출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뒷돈을 줘서라도 웨딩플래너와 제휴하고, 직접 방문한 고마운 소비자에게는 웨딩플래너보다 안좋은 조건을 제안하는 이상한 상황입니다. 일단 구매하고 나서도 예비부부의 걱정은 끝나지 않습니다. 웨딩 사업자가 대부분 영세한데다, 결혼인구의 감소로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어 갑자기 문 닫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불행한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해왔습니다. 이 일을 반복해서 점점 더 잘하게 되면 아마 우리는 소비자들에게 꽤 신뢰받는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1. 사업자를 한명 한명 만나면서 직접 제휴하여 웨딩북의 소비자가 최상의 가격과 혜택을 얻도록 하고 있습니다.
  2. 사업자의 계약 고객을 인증하고, 이들로부터 진성 후기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3. 광고를 배제하기 위해 뒷단에서 여러가지 검수 시스템이 청정한 커뮤니티, 컨텐츠를 자동 관리하고 있습니다.
  4. 그밖에도 블라인드 후기, 사용자 인증, 신고 정책 등을 조합하여 소비자가 정보의 신뢰성에 기여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웨딩플래너, 웨딩사업자, 소비자 모두에게 웨딩북이 single source of truth로 인정되고 활용되려면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지금까지 토론하며 나온 몇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 우리를 통해 구매/예약한 사업자가 부도났을 때, 소비자를 위해 금전적 피해와 대체 상품을 구하는 전 과정에 관여해야 한다.
  • 애초에 문제가 발생할 사업자를 Data를 통해 예측하여, 소비자가 안전한 선택을 하도록 안내해야 한다.
  • 결제/정산 인프라 역할을 하여 소비자에게는 에스크로를, 사업자에겐 유리한 정산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 공헌: 모두가 행복한 결혼을 할 권리

웨딩북이 사업적/서비스적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결혼 준비를 돕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성장해도 결혼식을 올릴 여력조차 없는 사람들은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합니다. 돈을 버는 것이 회사의 최종 목적이라면 이들을 고객으로 정의하기도 애매합니다.

거창한 문구보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하는 선택이 더 명쾌하게 우리의 사명과 비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사명: 사람들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행복하고] 현명하게 하도록 돕는다.
  • 비전: 동아시아 시민들을 위한 범국가적 [복지 인프라]

우리가 웨딩 플랫폼 대신 복지 인프라를 비전으로 정의한 것은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로 존재하기 위해 당연히 돈을 벌어야겠지만, 사업적 성과가 아닌 사명(mission)이 우리들이 일하는 이유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결혼을 준비할 여력이 안되는 사람들을 돕는 건 분명 부담이 되고,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결혼준비에 우리들이 손수 참여하면서, 인생의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가장 먼저 우리들의 일상이 달라질 겁니다. 우리의 고객이 웨딩북의 프로필이나 dashboard의 지표가 아니라 진짜 사람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돈을 벌면서 동시에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매일매일 자각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일상이 쌓이면 우리가 쫓고 있는 사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한명씩 찾아올 것입니다. 실적과 지표는 목적이 아니라 즐겁게 사명을 따라 일하는 결과물로 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건 비용이 아니라 투자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변화하게 될 것은 우리 구성원 뿐만이 아닙니다. 이 일을 하려면 당연하게도 웨딩사업자, 웨딩플래너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들도 저희와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이고, 최소한 그 경험을 함께 한 파트너들은 우리가 파괴적 혁신을 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믿고 의지해도 좋을 사람들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이런 믿음이 모여 거래가 일어나는 플랫폼인 웨딩북에서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 생계를 맡겨도 되는 생태계인 웨딩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