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의미, 성장을 먹고사는 허슬러(Hustler) – 하메식당 2화

하메식당: WE ALL HAVE A STORY TO TELL
행복의 순간을 만드는 사람들, 하우투메리 멤버 한 사람을 위해 열리는 식당입니다. 매주 목요일 하루, 저녁 7-9시의 식사만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준비한 음식과 피플 다큐멘터리, 하메식당을 시작합니다.

 

 

하메식당 2화. 사골 맛의 기묘한 토마토 라멘

 

 

그가 처음 식당에 들어왔을 때 혹시 지나가던 행인이 실수로 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명 오늘 오기로 한 사람은 PO(Product Owner)를 맡고 있는 분이라고 했는데, 차림새로 보아서는 이 사람이 컴퓨터 앞에 있는 것조차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성 패션 잡지에 나올 법한 실크 셔츠에 살짝 보이는 타투까지.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의 향수가 그보다 먼저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분명 잘못 들어왔겠거니 하며 친절한 미소로 말을 걸었다.

 

혹시 잘못…..

아 데이나 님이세요?

 

(헉)

 

만나기 전 주문서를 봤을 때도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었다. 먹을 때 즐거워지는 음식을 묻는 질문에 토마토 라멘이라니. 그것도 곤약면으로.

심상치 않아.

나의 침묵이 길어지며 의심의 눈초리를 느낀 것 같았다. 그는 어색한 듯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아 재현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일 마치시고 오신 거예요?

네. 빨리 온다고 왔는데. 조금 늦었죠.

아니에요. 딱 지금 그릇에 내려고 하고 있었어요. 마실 건 필요 없으세요?

생맥주 하나 있으면 부탁드려요. 아 한 잔 하실래요?

어…… 저는 우선 일하는 중이니.. 조금만 참아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웃음)

어떻게 두 번째 순서가 되셨군요. 

비공식적으로는 또라이순으로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라고요. 제품본부 내에서는 좀 그런 편이긴 한데 이렇게 두 번째 정도일지는….(웃음)

그럼 먼저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요.

네. 저는 임재현이라고 하고요. 나이는 서른 하나. 하우투메리에서 웨딩북 PO를 맡고 있어요. 여기서 일한 지 8개월 정도 됐는데요. 느낌 상 한 3년쯤 다닌 것 같긴 합니다.

 

# 심상치 않은 인생의 인트로

재현님 첫인상이 외국에서 생활하셨을 것 같은데 맞나요?

네. 어떻게 아셨지? 중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하고 그다음 해 캐나다를 갔어요.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다 봐버려서 나이로는 15살이지만 학력 상으로는 고졸이었던 거죠. 그 상태에서 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벤쿠버 한인교회로 혼자 떠났어요. 어차피 시간은 벌어놨으니 가서 교회에서 일도 좀 돕고 홈스테이를 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거죠.

너무 좋으셨겠어요. 그럼 거기서 쭉 사신 거예요?

아뇨. 방학 때 잠시 다닌 썸머스쿨에서 일이 터지는 바람에. 좀 무거운 이야기이긴 한데요. 그 학교에 제가 굉장히 따르던 누나가 있었어요. 누나가 세 살 위긴 했지만 열다섯에게는 열여덟은 엄청 어른처럼 보였거든요. 워낙 동생들을 잘 챙겨주고 착한 누나라 엄청 따랐었는데 어느 날 그 누나가 일본인 친구들에게 모욕적인 일을 당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아니 잠시만요. 저도 맥주를 마셔야겠어요. 시그널이 왔어요. 이 밤이 길어지겠다는.

아 네. 어서요. (웃음)

그런데 나이가 어리니까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현명한 방법은 모르겠고 마음에 분노는 쌓이고. 심지어 당사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뭐라고 나서서 동네방네 알리겠어요. 그런데 꼴에 남자라고 열 받는 걸 주체를 못했어요. 그래서 그 동네 한국 친구들을 불러 모아 걔네를 혼내주자고 계획한 거죠. 지금이었으면 더 좋은 방법을 선택했을 텐데 그때는 그것밖에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혼내줬군요?

네. 근데 아직도 신기한 게 하필 그게 사진이 찍혀서 마을 신문에 났어요. 바로 학교 교장실에 불려 갔죠.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하고자 했던 건데 바로 가해자 신분이 된 거예요. 그런데 더 골 때리는 건 걔네도, 저희도 왜 그랬는지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싸움을 건 저희 쪽은 모두 퇴학 선고를 받았죠.

그럼 그때 바로 돌아오신 거군요. 

아뇨. 그 일로 돌아올 뻔했는데 정말 진심으로 외국에 계속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랑 펜팔을 하던 뉴질랜드에 사는 조쉬라는 친구한테 이 얘길 했거든요. ‘나 이런 일을 겪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근데 나 한국 돌아가기 싫어’라고.

그랬더니 그 친구도 웃긴 게, ‘그럼 우리 집 목장 하니까 너 목장 와서 일 돕고 하면서 같이 살래?’라고 말한 거예요. 그 친구도 어리니까 부모님한테 말도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제안했던 거죠.

그걸 진지충처럼 받아들이셨군요. 생존력 갑이십니다.

네. Why not? (웃음) 이건 정말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벤쿠버에서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탔죠.

 

뉴질랜드에서 드디어 만난 조쉬

 

# 에미넴이 좋아 그저 외국에 살고 싶었던 아이

 

 

그런데 왜 그렇게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살고 싶으셨어요?

어릴 때 제 모든 관심사는 음악이었는데요. 한국 가수 중에서는 유승준을 정말 좋아했고, 외국 가수로는 우탱 클랜과 제 인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에미넴. 에미넴의 자서전을 읽었을 때가 거의 끝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얼마나 빠져있었냐면 중학교 1학년이 애미넴의 자서전을 한 번 독해해서 읽어보겠다고 하질 않나. 막 가사집도 다 뽑아서 해석하고 그랬어요.

그냥 좋아한다기보다는 이 사람의 철학을 이해하고 싶었던 거 같네요.

그렇죠. 이렇게 살아야 뭔가 좀 진짜 사는 것 같은 기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란만장한 삶이기도 했지만 그처럼 훗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라는. 말 그대로 이른 중2병이 왔던 거죠. (웃음)

그래서 이런 에미넴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배출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지금 말로 얘기하자면 음반제작자랄까? 어린 생각으로는 그걸 위해 서구권 문화에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가출을 했습니다.

가출이요?

제가 사실 학교를 그만두려고 가출을 했었거든요. 외국에 가겠다는 시위를 한 거죠. 아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진 않았어요. (단호)

네 꼭 적어드릴게요 (웃음)

공…..부…..는……. 나……름….. 잘……했……ㄷㅏ

 

그래서 처음으로 4일 동안 가출을 했는데 하루가 지나니 알겠더라고요. 결국 내가 들어가긴 들어가겠구나. 근데 제 딴에 그냥 들어가기에는 자존심이 상했어요. 그래서 친구 집에서 빌린 A4용지 한 네 장 정도에다가 앞으로 살아갈 10년 치 인생계획을 썼어요. 그걸 들고 집에 들어갔죠.

거기에 10년 뒤에는 제작자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이런 것까지 다 썼어요. 아버지는 워낙 반대가 심하셔서 그걸 보고도 딱히 달라지지는 않으셨지만요. 그래도 어머니는 아시게 된 거죠. 얘가 그래도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구나 하고요. 사실 어머니의 반절짜리 승낙 덕분에 캐나다를 갈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벤쿠버에서 조쉬의 목장이 있는 뉴질랜드로 건너갔고요.

아버지의 반대로 경제적 지원은 전혀 못 받았어요. 제 선택인 만큼 알아서 하라고 하신 거죠. 어머니가 아들이 안쓰러워 용돈을 한 번씩 보내주고 하시긴 했는데 그래도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일들 하면서 그 돈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뉴질랜드에서는 양털도 밀고 조쉬 집의 일들을 도운 거죠.

 

그럼 뉴질랜드에서 돌아오신 이유는 뭐예요? 그렇게 가고 싶었던 외국이었는데.

원래는 거기서 대학을 가고 싶었죠.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그때 딱 집안 사정이 더 많이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일단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죠.

 

# 정글북 세상의 서른 하나

원해서 한국에 오신 게 아니었을 텐데 불만이진 않으셨어요?

그렇지만 살아야 하니까 대학을 묵묵히 다녔죠. 근데 진짜 불행은 군대를 가고 나서 터졌어요. 말년 휴가를 나올 때쯤 아버지가 일을 하실 수 없게 되셨거든요. 그 후론 정말 다른 사람들을 볼 틈이 없었어요. 나도 살아야 하고,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던 상태였으니까요.

가장의 역할을 하셔야 했던 거네요. 부담이 엄청나셨겠어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죠. 가족을 버릴 수는 없으니까. 제가 또 동생이 둘이나 있거든요. 차례로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 그렇게 되니까 그전에 힘들었던 건 힘든 것도 아니었더라고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듦이었어요. 왜 이런 일들이 나한테만 일어날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죠. 다른 친구들을 보면 얘네는 그냥 별 탈없이 그냥 가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

이런 말을 편하게 하시는 것 보면 그래도 잘 극복해오신 것 같은데요. 

너무 아저씨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저를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제 인생은 조금 더 괜찮아져 왔어요. 그리고 제 자신도 아주 조금씩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맨날 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게 빨리 마흔 되면 좋겠다예요.

뜬금없을진 모르겠지만 팔에 하신 타투가 눈에 띄어요. 

아 이게 저희 동생들과 제 서른 살 생일에 함께 한 타투예요. 생각보다 제가 개방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결심하는데 까지는 꽤 걸렸는데. 그래도 저희끼리는 큰 의미가 있거든요.

어떤 의미예요? 

혹시 정글북 보셨어요? 제 서른 살 생일 기념으로 셋이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막내 동생이 정글북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모글리의 아버지 격인 아켈라라는 늑대를 보고 저를 떠올렸데요. 그 늑대가 정글의 가족들을 지켜주는 것처럼 제가 본인들을 지켜주고 시련을 막아주는 게 비슷하다고 느꼈나 봐요. 사실 저도 너무 힘들었는데 동생들 앞에서는 강한 척을 했었나봐요.(웃음)

 

거기서 모글리의 가족이 아침마다 정글의 법칙을 외워요. 늑대들이 다 같이 모여서 복창을 하거든요.

‘늑대 한 무리의 힘이 곧 한 마리 늑대의 힘이고,

한 마리 늑대의 힘이 곧 그 늑대 무리의 힘이다’라고.

 

그 대사예요. 그걸 동생들과 다 똑같은 곳에 똑같이 새긴 거예요. (웃음)

 

진짜 의미가 크네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세 남매의 연대감이 여기까지 느껴져요.  

다른 분들이 정말 신기해하시더라고요. 어떻게 남매들끼리 그렇게 잘 지내냐 하고. 그만큼 두 동생이 저를 많이 믿고 있다는 걸 저도 알아요. 저 또한 저를 성장시킨 건 동생들이라고 생각하고요. 두 동생이 목표의식을 가지게 해줬거든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죠. 저 혼자만 있었다면 분명 현실을 극복하기보다는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했을 테니까요.

 

그 무게가 힘들진 않으셨어요? 

참 이상하게 그게 힘들지 않았어요. 짐으로 다가왔다면 분명 이런 관계로 남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제가 형이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하고 이끌어줘야 한다고. 분명 다연님도 동생분에게 그런 존재이실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이 친구들이 저라는 존재로 인해 희망을 느낄 수 있을 때. 거기서 행복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그게 제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아니 이 미모 DNA 무엇?

 

# 뭣이 중헌디? 재미, 의미, 성장만 있다면

커리어는 어떤 분야에서 시작하셨어요? 음반 제작의 꿈이 있으셨잖아요.

전공이 광고홍보다 보니 제일기획에서 자연스레 인턴십을 했었고요. 처음 제대로 일을 시작한 곳은 워너브라더스뮤직이었어요. 산하 레이블에서 라이센싱이랑 프로모션 담당으로 일을 했었죠.

딱 하고 싶으셨던 일이었네요. 너무 재밌으셨겠어요.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루 종일 해외 레이블 중에 어떤 아티스트가 있고. 그 아티스트가 우리나라에 라이센싱이 되어있나 안 되어있나 체크하고 그게 가능하다고 하면. 그 레이블과 조인을 해서 국내에 그 앨범을 릴리즈 하고. 원래는 직접 레이블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이게 운영적인 측면에서 재무적으로도 많이 들어가야 하고. 그쪽도 투자를 받지 않으면 진행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 그래서 음악은 취미로 하기로 했죠. 지금 당장 그 일을 하지 않지만, 나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음반 제작의 꿈을 이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워너브라더스 뮤직 후에는요?

거기서 2년 정도 커리어를 쌓고 그다음 드라마, 영화 제작사에서 일했어요. 시크릿 가든 만든 제작사였는데, 계속 콘텐츠 쪽에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크게 한번 방향을 틀었어요. 어도비에 들어갔거든요. 그때 PM을 하면서 IT 프로덕트 쪽의 일을 처음으로 하게 된 거죠. 재밌었어요. 기획도 그때부터 배운 거고요. 그다음에 뷰티 쪽 스타트업에서 일했고 그리고 하우투메리네요.

그럼 본인의 커리어를 선택하실 때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가요?

한 번은 상돈 님(자주 등장하는 하우투메리 대표님)이 그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지금보다 연봉을 두 배 이상 받으려면 어떤 부분을 하실 거예요 라고요. 전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했어요. 실제도 그렇거든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어요. 재미, 의미, 성장인데요. 

그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당장 연봉을 두 배 받던 세 배 받던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이전 스타트업 다닐 때 주변 직원들은 다 나가고 6개월 동안 월급을 못 받았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저는 사실 돈만 없었지 저한테 필요한 그 세 가지는 다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다 이직을 생각할 때 저는 대리운전도 하고 새벽 4시부터 아침 9시까지 맥도날드에서 패티를 구웠어요, 그러면서도 꿋꿋이 그 회사를 다녔거든요.

영화 곡성을 예로 들면 빠를 것 같아요. 아시죠?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웃기게도 그걸 들으면서 저는 전혀 딴생각을 했어요. 나한테 진짜 뭐가 중요할까? 진짜 뭐가 중요할까?라고요. 그 답이 바로 그 세 가지였고요.

 

그럼 그 세 가지가 깨지지만 않으면 괜찮은 거네요.

네 그렇죠. 그런데 지금 우리 회사가 삼박자가 다 있는 회사예요. 진짜로 너무 재밌고. 우리 구성원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고. 제가 생각했을 땐 상돈 님이 복이 많아요. 이렇게 로열티 높고 좋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는 게 저희 회사 내 많은 경력직들이 느끼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 둘러싼 공기가 좋다

그럼 하우투메리는 어떻게 들어오시게 됐어요?

로켓펀치를 보는 도중에 발견했어요. 우선 웨딩 스타트업이라는 것에 살짝 놀랐죠. 아니 그 시장에서 뭘 하겠다는 스타트업이 있단 말이야 하고요.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웨딩북 앱을 다운받아봤어요. 그런데 앱을 사용해보고 너무 좋다. 여기서 배우고 싶다.라는 느낌보다 개선점을 같은 것들이 제 눈에 많이 보이더라고요. 제게는 그게 이유였어요. 오히려 ‘되게 재밌겠다, 내가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더라고요. 들어와 보니까 실제로도 진짜 많고요…. (웃음)

 

원래 일은 많은거니까요.. 왜 내가 눈물이 나지…

 

지금 하우투메리에서 일하는 건 어떠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돈 님은 정말 인복이 많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제가 느낄 땐 우리 회사에 부족한 건 오로지 성장을 위한 더 많은 투자금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정말 진심으로요.

언젠가 우리 회사를 다니는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뭐라고 답했냐면 ‘우리 회사는 되게 공기가 좋아’라고 했거든요. 이게 제 느낌이라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같이 일하는 구성원들 간의 존재하는 공기가 좋아요. 내 자리에 있는 공기와 분위기도 참 좋고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두 공기가 잘 어우러진다는 거죠. 그게 정말 맘에 드는 점이에요.

 

공기를 좋게 해주는 것의 요소는 뭐예요?

우선 사람. 이상하게 이 회사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어떻게 이렇게 한 회사에 모였지 할 만큼요. 그래서 그런지 서로에게 특별함을 느끼는 관계들이 많아요. 이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 사람이 있어서 좋다. 같은 느낌인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리더십의 형태인 것 같아요. 하우투메리 조직의 리더십은 카리스마 리더십이 아니에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모든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게 설득하는 리더십이기 때문에 상돈 님이 생각하는 회사의 비전을 모든 구성원이 완전히 공유한 상태에서 달리고 있거든요. 그리고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나 리더십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인 점. 모두가 자연스럽게 업무 외에도 직접 리더십을 펼치고 있고요,

또한 남을 탓하지 않는 문화라는 것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회고를 하면 분명 지난 프로젝트에 대해 고쳐야 할 점들이 있잖아요. 만약 A가 충분히 잘 되지 않았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 A를 맡았던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텐데 그게 아니에요. 다음에는 본인이 직접 A담당자를 돕겠다, A가 원활히 완료될 수 있도록 본인이 더 나서겠다고라고 해요. 탓하는 대신 개선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서로서로 내놓아요. 아시다시피 회사라는 건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는 곳이다 보니까 이런 게 정말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저희는 그래요. 그게 여기선 자연스러운 일이더라고요.

 

재현님이라는 분은 재미, 의미, 성장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바로 후회 없이 회사를 떠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 분에게 계속 일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맞아요. 사실 저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환경이 좋거든요.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이 회사에서 둥지를 터볼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 회사인 것 같아요. 상돈 님한테도 이 말 그대로 말씀드렸어요. 감사합니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에요.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코를 자극하던 향수 냄새는 온데간데없었다. 토마토 라멘을 선택한 것도 이제는 그리 특별하지 않게 느껴졌다.

겉보기엔 강한 색깔의 사람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진한 사골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딱 제가 좋아하는 맛이었어요. 저 혼자 열심히 말하느라 조금 남긴 게 아쉽네요.

제가 오히려 더 깨달음이 많았던 인터뷰였어요. 감사합니다. 라멘이 그 보상이 됐기를 바라요.

뭘요. 정말 혁준 님께 들은 대로 대화가 술술 나오네요. 또래 친구 하나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이 감명 깊은 식사를 일기장에 적으려고요. 두 번째 손님이 이 정도인데 다른 분들은 어떨까. 앞으로의 하메식당이 더 기대가 되네요 (웃음)

분명 훨씬 더 개성 넘치는 분들을 만나시게 될 거예요. 기대하시길

 

다음에 또 수다 떨러 오세요. 조심히 가시고요.

네. 오늘은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집까지 걸으려고요. 다음에 또 올게요.

 

 

 

데이나 (외부 필진)
H모 스타트업 대표분과 차를 한 번 잘못 마시는 바람에 1인 식당인 하메식당을 매주 열고 있습니다. 음식과 사람을 제일 좋아합니다. 요리도, 글도 개인의 세월을 담아낼 만큼 맛있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