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s story (2)] 위험한 고백

 

적당한 것과 애매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모 아니면 도여야지 개걸윷이 웬말인가. 애매한 것을 유난히도 못견디는 탓에 적당한 것을 넘어 끝이라고 여겨지는 곳으로 달려가야만 마음이 놓였다. 신기루같은 지평선 끝은 결코 나를 만나주지 않을 듯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애매한 중간 지점이 아닌 끝장을 보러 가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짜릿했으므로. 내게는 그것이 안정된 삶이었다.

 

그렇다보니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20대의 나에겐 오직 가족뿐이었다. 아픈 엄마, IMF에 고꾸라져 모든 것을 잃은 아빠, 공부밖에 할 줄 몰랐던 언니, 뒤늦게 합류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개님들까지. 서른 즈음부터는 가족에 일을 더했다. 마르고 닳도록 일하며 지난 10년 세월 동안 가족을 돌보느라 돌아보지 못한 내 인생에 대한 부채감을 바지런히 상환했다.

 

하우투메리에 합류하기 얼마 전인 지난해 여름은 처음으로 적당한 것과 애매한 것의 차이를 막 인지하기 시작한 때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죽음. 영혼을 쏟아 부은 회사와의 결별. 경주마였던 내게서 골인 지점인 지평선이 사라져버리는 대형 사건을 겪은 뒤였고, 앞을 더 잘 보기 위해 장착했던 눈가리개도 함께 사라진 상태였다. 눈앞으로는 이제껏 본 적 없는 풍경들이 펼쳐졌고, 그것들을 소화하기 위해 꼭 알맞게 적당한 선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법에 눈을 뜨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살은 온다던 어느 시구절을 외나무 다리 위 원수처럼 만나버린 서른 여섯의 여름. 당시 나는 굉장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민감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내달리지 않는 이 속도감에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선 의도적으로 나무늘보가 되어야만 했다. 정반합을 찾아가기 위한 나름의 시도였다.

 

그런 자신에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싶을 무렵 하우투메리를 만났다. 이제 남들처럼(?) 적당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들을 레퍼런스로 쌓으면 안심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 그 마음을 안고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었다.

 

회사에 대한 첫인상은 사람들이 회사를 되게 좋아한다는 거였다. 서로 서로 친해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그 친밀감의 강력한 연결고리는 회사를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그 시절에 일기를 적었다면 아마도 이 한 마디를 적지 않았을까 싶다. ‘아… ㅈ 됐구나.’ 물론 저 ㅈ은 ‘잘’의 초성이다.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회사라니, 회사를 너무나 좋아하는 동료들이라니 얼마나 잘 된 일인가. -_-

 

나는 더 이상 경주마처럼 살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고, 회사와 동료들을 기만하지 않는 수준으로 적당히 일할 것을 다짐하고 다짐한 터였다. 그리하여 기대감을 안고 시작한 새로운 생활은 금세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으로 얼룩졌다. 회사에 출근해 동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저들이 애정해 마지않는 이 회사를 사랑하지 않아. 앞으로도 예전처럼 영혼을 쏟아붓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저들은 회사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지? 그닥 특별해보이지도 않는데, 대체 왜들 저러는 거야? 이해되지 않는 마음과 죄책감이 교차하며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사실 나에겐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무언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내 탓을 하는 것이다. 경주마로 살던 시절에는 그것을 굉장히 괜찮은 스킬로 활용하곤 했었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주변 사람이나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 나를 탓하고 내게서 문제 원인을 찾고, 그로써 원인에 맞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굉장히 효율적이란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했다. 나는 언제나 끝장을 보러 가는 길이었으므로 그 길에 막힌 것을 뚫을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내탓이어도 상관 없었다. 하지만 골인 지점인 지평선이 사라지고 ‘내탓이오’ 하던 습관만 남자, 자책하던 습관은 삽시간에 나를 황폐하게 만드는 악몽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하우투메리는 이런 일기를 쓰게 만드는 곳이 아닐 수 없었다. ‘ㅈ 됐다.’ 아, 잘.

 

내적 갈등에 시달리며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슬그머니 경주마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불편함과 죄책감으로 얼룩진 시간 속에서도 하우투메리가 가진 잠재력을 알아볼 수 있었고, 가끔이지만 저 먼 곳에 다시금 지평선이 그어지는 듯한 환상을 보는 날도 있었다. 회사를 좋아하는 동료들 틈에서 나도 모르는 새 조금씩 물들어갔던 것 같다.

 

긴 이야기를 돌아왔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냥 ‘적당히’를 집어치우고 생긴대로 살기로 했다. 저들이 사랑하는 하우투메리에 나도 한번 빠져들어보고 싶어졌다. 사랑을 어떻게 적당히만 하겠는가. 그래도 지난 시간들 덕분에 나는 이전보다는 좀 더 노련한 경주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갈피를 잡고 보니 야속하게도 내게는 열렬히 사랑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긴 터널을 지나오며 에너지가 빠르게 방전된 것이었다. 출근하면 오늘치의 에너지를 신나게 쏟아붓고 개운하게 퇴근하기를 꿈꾸지만, 쏟아붓기는 커녕 순식간에 바닥나 버리는 비루한 에너지. 그런 내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능률을 떨어뜨리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죄책감도 의구심도 없는 상태로 끝장을 보러 갈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다. 약 3개월간의 휴가. 귀하게 얻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다시 한 번 신나게 달려보고 싶다. 때로 조금 느리더라도 신기루가 아닌 명확한 지평선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우리 함께 말이다.